말로써 짓는 죄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이었던 작가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45)는 “이 세상에 한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우리들 크리스천들이 마땅히 하여야 할 말이다. 세상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 크리스천들의 가치관이요 삶의 태도이다.

요즘 들어 크리스천들이 사회 여론으로부터 가끔 지탄을 받게 되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크리스천들이 책임감 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한 교회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결핵으로 죽어가는 오빠의 모습을 보다 못한 한 가난한 누이가 미군에게 몸을 팔았다. 그래서 오빠의 병을 치료하게 되었다. 오빠의 건강은 많이 회복 되어 갔다. 어느 날 한 교인이 이 사실을 알고는 소문을 퍼뜨렸다. 소문은 오빠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충격을 받은 오빠는 ‘동생이 몸을 팔은 대가로 병이 나았다니...’ 교회도 나오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편 몸까지 팔아 오빠를 살렸는데 이제 오빠가 없는 세상 살 가치가 있겠는가 하고는 누이도 목숨을 끊고 말았다.

장례식 날 두 시신을 앞에 두고는 목사가 울면서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너는 세상에 있을 때에 양떼를 얼마나 돌보았느냐?”고 나에게 물으시면 “하나님 용서하소서. 저는 양은 한 마리도 없고 오로지 이리떼만 있는 교회에서 이리떼만 먹이다가 왔습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말을 만들어 애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하는 이리떼이다. 이리떼가 활개를 치는 교회나 사회에서는 선량한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다.

한 남편이 목사에게 말하였다.

“목사님 성경에 예수께서 벙어리를 고치신 기적이 나오잖습니까? 그런데 저는 벙어리가 말하는 것은 큰 기적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정말 기적은 말 많은 수다쟁이 내 마누라가 잠잠케 하여 주신다면 그것이 정말 기적일 것입니다”

구약성경 잠언이 이르기를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하였다.


좋은 글이다. 다만 "요즘 들어 크리스천들이 사회 여론으로부터 가끔 지탄을 받게 되는 이유"라는 구절에 "가끔 지탄"이라는 말만 아니었으면..

적어도 목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이 한국 교회라서 가능한것인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인가?

사회 여론에서 지탄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누적되어 여론에서도
누구나 공감하고 문제를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지탄을 받는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인데 가끔 지탄을 받는 것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인양
글을 적어놓고 메일링으로 보내버리면 어쩌자는 것인지...

모 "크리스찬도 사람이고 목사도 사람이고 그래그래 사람이니깐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그래 우리는 Cool하니깐 어쩔수 없는거잖아??"
라는 식의 생각인가??

이건 너무 Cooooool하잖아??

"가끔" 이 단어가 주는 늬앙스는.. 참..

매일 지탄을 받지않는 의미에서 가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겠지만,
그 늬앙스라는 것이... 나름 사고방식이 요즘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수꼴동 기독교인으로 불리는 내가 이렇게 느끼는데..


17만여명 이상이 보는 메일링 리스트인데 다음부터는 단어 사용에
신경 써서 사용해 주시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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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9 12:59 2009/07/0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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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일만엔 지폐에는 후꾸자와 유키치(福澤喩吉, 1835-1901)의 초상이 들어있다. 그는 일본을 근대화로 이끈 선각자 중의한 사람이다. 그는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여 준 사상가이기도 하다. 그는 메이지 유신이후 공직에 부임하여달라는 간청을뿌리치고 오로지 교육사업에 전념하였다. 지금의 게이오대학(慶應大學)이 그가 설립한 대학이다. 그가 남긴 일곱가지 심훈(心訓)이있다.

1) 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멋진 것은 일생을 바쳐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2)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인간으로서 교양이 없는 것이다.
3)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것은 할 일이 없이 사는 것이다.
4) 이 세상에서 가장 추한 것은 타인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5)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남을 위해 봉사하고 그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6)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모든 사물에 애정을 느끼는 것이다.
7)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사람으로서 거짓말을 말하는 것이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은 성경의 십계명에도 들어 있다. 후꾸자와 유키치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거짓말과 거짓증언을하며 산다는 것은 실로 슬픈 일이다. 거짓이 넘치는 사회에 행복이 깃들 수 없고 희망이 자랄 수 없다. 2003년의 한국과일본의 경우를 비교한 통계를 보면 우리 사회의 장래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게 된다.

위증이 우리가 일본의 16배,
무고는 무려 39배,
사기는 26배에 이른다.

유키치의 7훈을 읽으며 작은 일에도 거짓이 없이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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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7 20:42 2008/04/0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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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업자득의 통일부??
휴~~ 이거 너무 강하게 나오신거 아니신지.. 하핫..
본인 또한 역대 통일부 장관들이 맘에 든건 아니지만..
-이게 몬 대한민국 통일부인지 북한 대변부인지 약간 혼동이 될때도 몇번있었다지요..
ㅋㅋ 북한 인민들을 위한 대변인자격이었던가??? ㅋㅋ -

여하튼.. 간만에 블로깅중...
요즘은 study쪽에 치중하고 있슴죠.. ㅎㅎ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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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3 03:42 2008/01/23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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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가난하게 살아가는 방글라데시 국민이 행복지수가 가장 높습니다.
많고 풍성한 것이 사람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이 더 크게 가지려고 합니다.
많이 갖고자 하는 것은 경쟁을 낳습니다. 경쟁하는 것은 발전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경쟁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여유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것이 잘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족을 즐기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많으면 나눌 줄 알고 적어도 만족할 줄 알고,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소비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내어줄 마음이 있고,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넉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현대인들은 경제적 가치를 마치 절대가치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경제성장이 되지 않고 소비가 줄고, 취직이 되지 않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성장은 그만큼 잃어버리는 것들도 있습니다.
건설 활성화를 위해 도시와 도로 건설을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산과 들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과도한 투자, 땅을 늘리려는 개벌간척 등은
더 소중한 자산을 잃습니다.
경제적 가치를 성장에만 두지 않고 나누고 격려하고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빈부문제도, 환경문제도, 실직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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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2 10:29 2007/05/0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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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극복의 단계


정범모 교수는 『한국의 내일을 묻는다』는 제목의 책에서 1945년 해방 후로 우리가 거친 빈곤의 단계를 3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째가 절대빈곤의 단계이다. 모두들 가난을 숙명이라 여기고 노력하여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숙명론에 젖어 살았던 시기이다. 1960년대 중반에 들어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기이다. 그 시절에는 경제학자들 중에서도 농업의 남한, 공업의 북한이어서 통일되기 전까지는 경제발전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기까지 하였다.

둘째가 빈곤극복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1960년대에 들어 경제개발이 불붙기 시작하고 그 열매를 맛보게 되기 시작하면서 국민들이 빈곤은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그래서 온 나라가 열심히 일하고 일하면서 신바람나기 시작하였다.

셋째는 졸부(猝富)의 단계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게 되면서 부를 누릴 수 있게 되자 그 동안의 가난에 한(恨)이 져서 그런지 국민들은 마치 가난에 복수라도 하듯이 마구 쓰고, 뽐내고 기업들은 팽창만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게 빚이 무려 500조 원 가까이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는 넷째 단계로 들어가야 할 때다. 성숙한 부자의 단계로 들어가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 들어가려면 꼭 있어야 할 조건이 있다. 건전한 국민윤리 내지 경제윤리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건강한 자본주의는 성숙한 시민정신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절대로 오를 수 없는 고지(高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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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9 15:33 2007/03/2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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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팀에는 수비수들이 있고 공격수들이 있다. 물론 양쪽이 모두 중요하고 각 선수들이 감당하여야 할 몫이 다르다. 그러나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도 있듯이 수비보다 공격이 더 중요한 것은 두 말할 여지조차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두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길을 찾지 못하고 좌절하고 날개를 접는다.

그러나  우리들의 바깥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며 앞으로, 또 앞으로 전진 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국가는 국민들을 지켜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양극화가 날로 깊어지고,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의 폭은 늘어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쟁력을 키워줘야 한다. 움츠려 들기보다 공격적이 되어야 한다. 축구팀으로 말하자면 모두가 공격수가 되어야 한다,

자신과 가정, 사회와 국가를 위하여서라면 온 몸으로 부딪쳐 나가겠다는 투지(Fighting Spirit)가 있어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이 없이 지금의 난국을 돌파하여 나가기는 불가능하다. 원래 인생은 어느 사람, 어느 나라에게나 순탄한 길이 아니다. 인생은 온갖 장애물을 하나 하나 극복하여 나가는 장애물 경주와 같다. 자신의 가로 막는 장애물을 넘어서지 못하면 패배자로 남게 된다.

가로 막는 장애물들을 하나, 하나 극복한 자만이 승리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공격수가 되는 것이다. 생의 경기장에서 승부를 위해 정면으로 돌파하는 공격수가 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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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5 10:48 2007/03/1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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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Forbes Korea 2 월호를 읽었다. GE Korea 이채욱 회장에 관한 글이 마음에 닿기에 인용 소개한다.

이채욱 회장은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경북 상주 산골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한 뒤 철공소에 취직하려다가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영남대학을 거쳐 72년 삼성물산에 입사하였다. 이렇게 평사원으로 시작한 그의 삶이 GE Korea의 CEO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직무에 대한 열정 탓이라고 하였다. 열정 있는 나날이 운명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몸의 다섯 부위를 들어 다음같이 설명하여 준다.

첫째 머리이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전문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 이다. 컴퓨터와 첨단장비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셋째 이다. 외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넷째 가슴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가슴경영이어야 한다.
다섯째 이다. 멀리 내다봄으로 비전과 꿈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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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7 13:35 2007/03/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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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부 큰 시장


작은 정부 큰 시장’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특성을 드러내는 핵심이다. 일본은 지금 ‘작은 정부’로 가는 개혁을 진행 중에 있다. 구체적인 예가 일본 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시장화 실험’의 경우이다. ‘시장화 실험’이란 그간에 정부가 독점하여 왔던 공공서비스 활동 중에서 일부를 민간에 위탁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12월 24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의하면 일본 정부는 국민연금보험료 징수업무를 지난해부터 민간 기업에 넘긴 결과 2년간에 그 경비가 무려 60% 가까이나 줄어들었다고 보도하였다.
이런 성공에 힘을 얻은 일본 정부는 내년에는 27개 분야로 그 사업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일본 정부의 또 하나의 계획은 내년에 국가공무원의 숫자를 대폭 줄이는 계획도 포함 된다.

‘작은 정부’를 추진하는 다른 하나의 기준으로 규제완화조치가 포함 된다. 일본의 경우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각종 규제를 완화하여 온 결과 생산성(生産性)이 8% 가까이나 향상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그 기간 동안에 세계 경제협력개발기구인 OECD 회원국들의 연평균 생산성 상승률이 1.2%인 점에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런 점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를 거슬러 나아가고 있다. 공무원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가 하면 규제조치는 풀릴 줄을 모르고 있다. 어느 당, 누가 집권을 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다. 어느 당의 누군가가 집권을 하든 인류가 오랜 역사를 거치며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어진 이런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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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6 10:40 2006/12/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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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Mohandās Karamchand Gandhi 1869∼1948)에게 어느 날 한 모자(母子)가 찾아 왔다. 어머니가 간디에게 부탁하기를 “존경하는 선생님 내 아들을 좀 도와주세요.”하였다. 간디가 온화한 얼굴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예 도와드리고 말구요. 무었을 도와 드릴까요?”하고 물었더니 그 어머니가 말했다. “선생님 내 아들이 설탕을 너무 좋아해요. 설탕을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하니 내 아들에게 설탕을 끊으라고 말씀해 주세요. 아들이 아무 말도 안 듣는데 선생님 말씀은 듣겠답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 대답을 들은 간디는 한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그렇다면 내가 아드님을 도와 드릴테니 보름 뒤에 다시 찾아와 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에 그들 모자가 보름 뒤에 다시 찾아 갔더니 아들에게 설탕은 몸에 해로운 것이니 설탕을 끊도록 하라고 타일러 주었다. 간디의 말을 듣고 아들은 그 날로부터 설탕을 완전히 끊게 되었다.
얼만 간의 세월이 흐른 후 그 어머니가 다시 간디를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그때 처음 찾아 왔을 때에 아들에게 타일러 주시지를 않으시고 왜 보름 뒤에 다시 오라고 하셨지요?”하고 물었다.

간디가 답하기를 “사실은 나도 그때 설탕을 좋아하여 많이 먹는 편이었는데 아드님을 도우려면 내가 먼저 끊는 모범을 보이고 난 후에야 아드님에게 끊으라고 권면할 자격이 있어지겠기에 내 스스로 먼저 끊는 기간을 보름을 잡은 것이지요.”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간디의 이런 일화를 들을 때면 진정한 지도자란 이런 자기 진실이 내면에 있어야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힘이 있게 되는 것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이런 자기 성실이 부족함을 돌이켜 반성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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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0 09:50 2006/10/2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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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 5월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에 워싱턴 D.C.에 들려 상원의 외교 분과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루거 의원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그의 사무실에서 들은 말이 있다.

미국의 정치가들이 ‘코리아’에 대하여 평가하기를 ‘Voluntary Surrender Country’로 분류한다는 것이었다. ‘Voluntary’란 말은 발론티어라 할 때의 ‘자발적’이란 뜻의 단어이고 ‘Surrender’란 말은 ‘항복한다’는 뜻의 단어이다. 그래서 Voluntary Surrender Country란 말은 ‘자발적으로 항복해 버린 나라’란 말이다.
말하자면 북한군이 공격해 오지도 않았는데 남한 쪽에서 자발적으로 항복해 버린 나라가 코리아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우리로써는 듣기에 자존심이 몹시 상하는 말이지만 문제는 우리가 어쩌다가 동맹국의 중견 정치가로부터 그런 말까지 듣게 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금번 북한이 핵실험을 하게 된 사태를 접하면서 그때 들었던 미국 정치가의 말을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간에 우리가 ‘햇볕정책이니, 민족공조니’하면서 좋은 마음으로 북한을 열심히 도와주었던 것이 결과는 핵실험으로 나타나게 되고 말았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이르고 만 것이다. 따지자면 김정일이 핵폭탄을 만드는 데에 우리가 뒷돈을 대준 꼴이 되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낭패스런 일인가?

이 일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누구 탓이냐를 따지는 일에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더러는 햇볕정책 탓이라 하는가 하면 심지어 미국 탓이라고 까지 말하는 노인까지 있다.

지금은 누구 탓이냐를 따질 때가 아니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따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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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4 23:07 2006/10/1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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